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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버넌트를 보고,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조금 닮고 싶어졌다

by 쩐남쩐녀 2026. 9. 26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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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 ‘레버넌트: 죽음에서 돌아온 자’를 보는 내내 한 가지 생각이 따라다녔다. 

아들을 잃고 상처 입은 몸으로 겨울 설원을 건너는 휴 글래스처럼, 

나도 그 상황에서 살아남으려 할 수 있었을까. 

해보기도 전에 겁먹고 포기할 때가 있는 나는, 

그의 포기하지 않는 마음을 조금 닮고 싶어졌다

 

 

영화 ‘레버넌트: 죽음에서 돌아온 자’를 보는 내내 한 가지 생각이 따라다녔다. 

아들을 잃고 상처 입은 몸으로 겨울 설원을 건너는 휴 글래스처럼, 

나도 그 상황에서 살아남으려 할 수 있었을까. 

해보기도 전에 겁먹고 포기할 때가 있는 나는, 그의 포기하지 않는 마음을 조금 닮고 싶어졌다.

눈은 아름다웠지만, 이 영화 속 설원은 조금도 낭만적으로 보이지 않았다.

한 걸음 옮기는 일도 버거운 추위와 굶주림.

몸은 이미 망가졌고, 곁에 있던 아들마저 눈앞에서 잃는다.

그런데도 휴 글래스는 다시 움직인다.

저 상태로 어떻게 또 몸을 일으킬까.

나는 그 상황이라면 살아남으려고 했을까. 

아니면 어느 순간, 이제 됐다고 놓아버렸을까.

 

 

 

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과 눈 덮인 숲이 담긴 영화 레버넌트 공식 포스터
‘레버넌트: 죽음에서 돌아온 자’ 공식 포스터. 이미지: 20th Century Studios 공식 사이트 / 저작권은 권리자에게 있음

 

 

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싸움이 되는 순간


2015년 공개된 ‘레버넌트’는 알레한드로 곤살레스 이냐리투 감독이 연출한 작품이다. 

1823년 미국의 황야를 배경으로, 

사냥꾼 휴 글래스가 곰의 습격으로 크게 다친 뒤 

동료에게 버려지고 홀로 살아남는 과정을 따라간다.



실제 사건에서 영감을 받은 영화지만, 

모든 장면을 역사적 사실 그대로 옮긴 기록물은 아니다. 

그래서 나는 사실과 허구를 따지는 마음보다는, 

한 사람의 몸이 어디까지 버틸 수 있는지를 보게 됐다.

영화 속 생존은 멋진 결심으로 시작되지 않는다.

기어서라도 조금 더 움직이고, 

얼어붙은 손으로 불씨를 살리고, 

또 한 번 숨을 쉬는 일에 가깝다. 

 

인간다운 품위까지 챙길 여유는 없다. 

그저 살아 있는 몸이 본능적으로 다음 순간을 향해 간다.

레오나르도 디카프리오는 이 작품으로 아카데미 남우주연상을 받았다. 

영화는 촬영상과 감독상까지 모두 세 부문의 오스카를 수상했다. 

대사가 많지 않은데도 아픔과 공포가 그대로 전해지는 이유는, 

그의 얼굴보다 몸 전체가 말을 하고 있기 때문인지도 모르겠다.

 

겨울 숲에서 모피를 두른 휴 글래스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서 있는 레버넌트 공식 이미지
눈 덮인 숲의 휴 글래스. 이미지: 20th Century Studios 공식 사이트 / 저작권은 권리자에게 있음

 

 

아들을 잃고도 다시 몸을 일으킨다는 것


휴 글래스를 움직이게 한 힘을 단순히 ‘복수심’ 하나로만 말하기는 어려웠다.

영화에서 그의 어린 아들 호크는, 

움직일 수 없는 아버지 앞에서 피츠제럴드에게 살해된다. 

글래스에게 살아남는 일은 아들을 잃은 슬픔과 사랑, 분노가 모두 엉킨 일이었을 것이다.

나는 이 대목에서 자꾸 멈칫했다.
아들을 잃은 뒤에도 살아야 할 이유를 찾을 수 있었을까. 

그 사람을 찾아가야겠다는 마음 하나로 그 추위와 고통을 버틸 수 있었을까.

아무리 상상해봐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.
오히려 아무것도 할 수 없다는 절망에 주저앉았을 것 같다. 

그래서 그의 생존이 더 대단하다기보다, 조금 무섭고 처절하게 다가왔다.

 

 

 

눈 덮인 숲에서 작은 불씨를 바라보는 남자와 아들의 기억을 표현한 창작 일러스트
아버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아들의 기억을 표현한 AI 창작 일러스트. 실제 영화 장면이 아님

 

 

나라면 그 설원에서 무엇을 했을까


레버넌트의 겨울은 사람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.

끝이 보이지 않는 눈밭과 숲, 차가운 강물 앞에서

 인간의 의지는 대단한 말이 아니라 

아주 작은 동작이 된다. 

지금 당장 숨을 한 번 더 쉬는 것. 

손을 뻗어 몸을 조금 옮기는 것. 

오늘 밤을 넘기기 위해 불을 피우는 것.

나는 아마 많이 울고, 겁을 먹고, 

여러 번 포기하고 싶었을 것이다.

그 생각을 하니 오히려 ‘강한 사람만 살아남는다’는 말과는 조금 멀어졌다. 

두려움이 없어서 버티는 것이 아니라, 

두려운 채로 몸이 할 수 있는 일을 하나씩 이어가는 것. 

이 영화가 보여준 생존은 그런 모습이었다.

감독 이냐리투도 이 작품에서 생존과 가족, 

신뢰를 이야기하고 싶었다고 했다. 

설명하는 대사보다 이미지와 몸을 통해 감정을 보여주려 했다는 

그의 말을 알고 나니, 

왜 설원 위 글래스의 움직임이 그렇게 오래 남았는지도 조금은 알 것 같았다.

 

 

거대한 눈 덮인 황야에서 희미한 빛을 향해 기어가는 한 사람을 그린 창작 일러스트
멈추지 않으려는 생존의 움직임을 표현한 AI 창작 일러스트

 

 

포기하지 않는다는 것에 남은 잔여감정


잔여감정이라는 말이 맞을 것 같다.

영화가 끝났는데도 마음이 깔끔하게 정리되지 않았다. 

인간의 생존력이 대단하다는 감탄만 남은 것도 아니고, 

끝까지 버텨야 한다는 교훈을 얻은 것도 아니다.

왜 그렇게까지 살아야 했을까 싶은 마음과, 

그런데도 어떻게든 살아냈다는 마음이 함께 남았다.



포기하지 않는다는 건 한 번도 무너지지 않는 일이 아닐지도 모른다. 

다 무너진 뒤에도 지금 내 몸이 할 수 있는 일을 하나 찾아내는 것. 

그게 숨 한 번일 수도 있고, 

손을 조금 더 뻗는 일일 수도 있다.

그를 끝까지 움직이게 한 게 복수심이든, 

아들을 잃은 슬픔이든, 

결국 내게 오래 남은 건 포기하지 않았다는 사실이었다.

나는 안 될 것 같다는 생각이 먼저 들면, 

아직 해보지도 않았는데 지레 겁을 먹고 포기할 때가 있다.

휴 글래스처럼 극한의 상황을 견디고 싶다는 건 아니지만

다만 아직 해보지도 않은 일을 미리 포기하지 않는 마음만은 조금 닮고 싶어졌다.

내가 휴 글래스와 같은 상황에서 그렇게 할 수 있었을지는 여전히 모르겠다.

그래서 이 영화가 더 오래 남는다. 

쉽게 ‘나도 할 수 있다’고 말하게 하지 않고, 

정말 그럴 수 있겠느냐고 조용히 되묻게 된다. 

처절한 영화의 장면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. 

맘 아파~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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